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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차이는 언제나 있었다

최근 인터넷 게시글에서 세대차이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세대차이 논쟁은 사람마다 그 인식도, 감정도 제각각이라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세대차이란 정말 그렇게 특별한 문제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대차이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인류 보편의 경험입니다.

고대부터 존재한 세대차이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젊은 세대를 비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사치스럽고 예의가 없으며 권위를 무시하고,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나지도 않고, 부모에게 대들며, 식탁에서는 음식만 탐하고, 교사들을 괴롭힌다.”

이 인용의 정확한 출처는 논란이 있지만, 기원전 5세기경 상류층 사이에 퍼져 있던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에서 실수도 많았고, 속은 상처투성이여서 냉소적이고 의심 많으며, 욕망도 대단치 않고, 인색하고 소심하다.”

이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중년·노년 세대에 대해서도 시대적 특성과 심리를 포착한 표현입니다.

로마 시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ce)는 기원전 20년경 『송가 제3권』에서 이렇게 씁니다:

“우리 조상 세대보다 우리는 더 무가치하고, 향후 세대도 우리보다 더 타락할 것이다.”

이러한 자기세대에 대한 회의와 한탄은, 지금 우리가 하는 말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또 1624년 한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결코 이렇게 건방지지 않았고, 수치도 모르며,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

이처럼 고대와 근현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다음 세대를 걱정하고 불만을 가졌습니다.

동양 고전

동양에서도 유사한 정서가 오래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예기(禮記)』 「단궁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예를 다하지 않으며, 스승에게도 공경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연장자와 대등하게 말하고, 예절을 무시하고 행동이 가볍다.”

『한서(漢書)』 「예문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후생들은 글만 읽고 예의는 알지 못하니, 도가 점점 쇠퇴한다.”

이 모든 예시가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세대차이는 특별한 시대에만 나타나는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전통 속 세대 인식

한국 사회 역시 예로부터 세대 간 인식 차이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문인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손끝의 재주만 익히고, 마음공부에는 뜻이 없다. 옛 사람들의 도를 이야기하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비웃고, 말이 짧고 급하여 뜻을 전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젊은 세대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상의 속도가 달라지면서 대화와 교육 방식도 달라지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실학자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젊은 관료들의 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근래 젊은 이들은 겉치레와 말재간만 배우고,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는 덕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이익(李瀷) 또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다음과 같은 현실을 지적합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도가 무너졌고, 젊은이들은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며 옛사람들의 말을 귀찮아한다.”

이러한 문헌들은 세대 간 인식 차이가 단지 현대 사회의 문제만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세대 갈등은 시대를 넘어 존재해왔으며, 우리가 겪는 갈등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세대차이는 당연한 것

시대가 바뀌면 사회가 요구하는 시민의 모습도 함께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고, 살아가는 문법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교육도 달라지고, 훈련도 달라집니다.
그 결과,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세계관과 언어, 행동 규범을 지닌 채 성장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왜 저렇게 생각하나”라고 묻는 건 잘못된 질문입니다.
‘그렇게 자라났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세대차이는 ‘생기면 안 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차이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중요한 건 ‘세대차이가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그 차이를 인지한 사람이 어떤 역할과 태도를 취하는가 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야 하는 사람은,
경험과 연륜을 가진 시니어입니다.

시니어라는 자리에 대한 책임

연륜이 쌓였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더 먹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감각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조율할 수 있는 태도와 책임감을 함께 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대 간의 인식 차이는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간극을 먼저 좁혀야 했던 쪽은 윗세대였습니다.

우리가 과거 어른들과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다가와 주었고, 말을 걸어주었고, 먼저 이해하려 애썼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니어라는 위치는 권위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단순한 ‘이해심’을 넘어, 제도와 구조로 다름을 연결하는 일까지 포함합니다.

마무리하며

세대차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차이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려는 시도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시니어에게 바라는 역할입니다.

세대는 늘 바뀝니다.
남는 것은, 그 차이를 받아들이고 연결하려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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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리더십